베토벤 현악 사중주 16번, Op. 135

String Quartet No. 16 in F major, Op. 135

 

https://www.youtube.com/watch?v=dst6wltVbr8

 

1. 개요 및 역사적 배경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 그리고 마지막 완성된 작품
베토벤 현악 사중주 16번 F장조, Op. 135는 그의 생애 마지막 완성된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말과도 같은 음악입니다. 후기 현악 사중주(Op. 127, 130, 131, 132, 133, 135)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짧고 전통적인 형식을 따르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는 베토벤의 인생을 향한 깊은 통찰과 유머, 그리고 운명적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4악장은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라는 철학적 질문과 답변을 담고 있어, 베토벤의 유언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2. 감상 포인트 – 작품의 구조와 정서

이 곡은 베토벤 후기 작품답게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밝고 가벼운 순간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기 현악 사중주 중에서 가장 명료하고 응축된 표현을 담고 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도달한 음악적 경지를 보여줍니다.

① 1악장 (Allegretto) – 맑고 간결한 출발

• 베토벤 후기 사중주치고는 매우 간결하고, 마치 초기 고전주의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악장입니다.
• 그러나 이 단순함 속에는 베토벤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 처음엔 무심한 듯한 주제가 반복되지만, 점차 발전하며 복잡한 대위법과 리듬 변화를 거듭합니다.
• 이 악장을 듣다 보면, 마치 인생의 덧없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② 2악장 (Vivace) – 격렬한 리듬의 춤곡

• 빠르고 경쾌한 악장으로, 6/8박자의 불규칙한 리듬이 특징적입니다.
• 베토벤 후기 현악 사중주의 전형적인 특징인 급격한 다이내믹 변화와 리듬적 변칙성이 가득 차 있습니다.
• 특히 중간 부분에서는 갑작스럽게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어떤 심오한 사색이 스쳐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장난기 가득한 분위기가 유지되며, 베토벤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악장입니다.

③ 3악장 (Lento assai, cantante e tranquillo) – 마지막 명상과 기도

• 이 곡의 감정적 중심입니다.
• Cantante e tranquillo (노래하듯이, 고요하게)라는 지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아름답고 평온한 멜로디가 등장합니다.
• 베토벤의 마지막 사중주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 후기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순수한 내면적 평화가 이 악장에서 극대화됩니다.
• 라살 사중주단(La Salle Quartet)이나 부쉬 사중주단(Busch Quartet)의 연주에서는 이 악장을 마치 천상의 기도처럼 연주하며,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점점 사라지는 듯한 흐름은, 마치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숨결과도 같습니다.

④ 4악장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Muss es sein? – Es muss sein!)

• 베토벤은 이 악장을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어렵게 내린 결심)"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라는 대립적인 주제가 등장하며, 이 악장의 핵심을 형성합니다.
• 이 짧은 문구에는 베토벤의 철학적 유서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Muss es sein? →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과 질문
  • Es muss sein!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운명의 결정
• 음악적으로도 이 부분은 극적인 대비와 변화를 통해, 청자를 철학적 사색으로 이끕니다.
• 처음에는 무겁고 장엄하게 시작하지만, 점차 가벼운 분위기로 바뀌며,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한 경쾌함을 보여줍니다.
•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피날레처럼 fanfare 스타일로 결말을 맺으며, 마치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3. 총평 – 베토벤의 마지막 음악적 선언

베토벤 현악 사중주 Op. 135는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 비극과 희극,
• 심각한 철학과 유머,
• 운명의 질문과 받아들임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음악입니다. 후기 사중주의 거대한 실험과 심오함(Op. 130, 131, 132, 133)에 비해 비교적 간결한 형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베토벤은 마지막까지 음악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1. 3악장에서 그의 마지막 기도를 듣고,
2. 4악장에서 인생의 필연적인 질문과 운명을 마주하는 것,
   이것이 베토벤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결국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이 작품을 끝맺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인생을 마주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운명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